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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게임 주요뉴스 ② 암울한 전망에 희망 비춘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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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국 게임업계는 분명 양적으로 성장했다. 아직 집계가 되진 않았지만 올해 국내 게임시장 규모는 14조 원을 가뿐히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무작정 체중 불리기에만 집중해서일까, 내부적으로는 곳곳의 혈관이 막혀가는 성인병 증상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게임메카는 연말을 맞아 올 한 해 게임업계 주요 이슈들을 분야별로 정리해 보는 특집코너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 편집자 주」

② 기관/민간 정책
③ PC 온라인게임
④ 콘솔/하드웨어
⑤ e스포츠

올해 게임업계는 안팎으로 힘들었다. 내부적으로는 허리가 없는 현실을 바꿀만한 뾰족한 대안이 나오지 않았고, 밖에서는 업계 전체에 충격을 준 질병코드가 있었다. 게임 질병코드가 국내에 도입된다면 게임은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간주될 수 있다. 질병을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강력한 규제가 줄줄이 나오며 업계 전체가 돌이킬 수 없는 침체에 빠지리라는 우려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미세먼지가 낀 듯 전망은 불투명했으나 그래도 업계 입장에서 작은 숨구멍은 있었다. 가장 큰 부분은 게임산업 주무부처라 할 수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및 산하기관이 악조건에서도 제 역할을 해줬다. 보건복지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게임 질병코드 도입에 적극 반대했고, 비영리게임 심의 면제나 온라인게임 결제한도 폐지, 셧다운제 완화 등 눈에 뜨이는 규제 철폐 움직임도 많았다. 환경은 좋지 않으나 주무부처로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질병코드 둘러싼 격렬한 찬반대립

▲ 게임 이용장애 관련 민관협의체 구성 (자료제공: 문체부)

올해 이슈 중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는 ‘게임 질병코드’다. 정부로 보면 문체부와 보건복지부가 국내 도입 여부를 두고 팽팽히 맞섰고, 산업에서 보면 게임업계와 의료계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문체부는 WHO가 ‘게임 이용장애’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했으며,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는 한국 청소년 2,000명을 5년 간 조사해 게임을 과하게 이용하는 이유는 ‘게임’이 아니라 학업 스트레스와 자기 통제력에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5월에 WHO는 ‘게임 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결정했고, 국내 도입을 두고 각계각층이 격돌했다. 보건복지부는 국내 도입을 위한 협의체를 만든다며 적극 나섰고, 문체부는 보건복지부가 만드는 협의체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게임 질병코드를 두고 부처 간 갈등이 거세지자 결국 국무조정실 주도하에 지난 7월에 민관협의체가 생겼다. 민관협의체는 ‘게임 질병코드’ 국내 도입 찬성과 반대 입장을 들었고, 내년에는 관련 연구를 추진한다.

업계에서도 격렬한 찬반대립이 있었다. 게임업계에서는 국내 협단체 89곳이 모인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위원회’가 출범했고, 의학계에서는 최대한 빨리 게임 질병코드를 도입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와중 국내 주요 게임사가 한데 모인 판교에 ‘게임중독은 질병’이라는 현수막이 내걸렸고, 현수막을 건 장본인 윤종필 의원은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 국정감사에서도 게임 질병코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게임업계 입장에서 ‘게임중독’이라는 키워드에 맞서는 논리가 발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업계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부분은 ‘게임은 수출효자이자, 4차산업 핵심’이라는 것인데, 이러한 논리로는 아이가 게임에 과하게 빠질까 봐 걱정하는 부모를 설득하기 어렵다. 산업적인 부분이 아니라 게임의 다른 부분을 조명하거나, 병원 치료가 아닌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등 기존과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비영리게임 심의 면제와 온라인게임 결제한도 폐지

▲ 결제한도 폐지 후 공개된 한국게임산업협회 가이드라인 (자료제공: 한국게임산업협회)

업계 입장에서 힘 빠지는 일만 있었던 한 해는 아니었다. 가장 환영할만한 부분은 성인에 한해 온라인게임 결제한도가 폐지된 것이다. 시중에 파는 물건 중 성인에게 ‘이 이상 구매하지 마세요’라고 제한하는 종류는 거의 없다. 금액 제한이 있는 것 중 하나가 복권인데 이는 사행산업이다. 즉, 게임에 결제한도가 있으면 사행산업과 동일하게 취급될 우려가 있다. 단순히 매출을 떠나서 게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결제한도 폐지는 필요했다.

기념비적인 규제 철폐가 하나 더 있다. 올해 9월부터 비영리게임은 심의가 사라졌다. 이 이슈는 본래 심의를 받지 않은 자작 플래시게임 다수를 제공하던 ‘주전자닷컴’ 등이 차단되며 불거졌다. 취미로 만든 게임도 심의를 받으라는 것은 과한 규제가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고, 비영리게임 심의를 면제하라는 법안도 다수 발의됐다. 이에 문체부, 게임위가 관련 제도를 고쳐 비영리게임 심의를 면제했다.

▲ 비영리게임은 심의를 안 받아도 된다 (사진제공: 게임위)

올해 게임 정책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불합리한 규제를 풀어주려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셧다운제도 문체부와 여가부가 제도 개선을 위한 협의를 시작했고, 영업정지도 게임사가 서비스하는 모든 게임이 아닌 위법 사항이 발생한 게임에만 적용하도록 완화됐다. 업체가 게임을 심의해서 출시하는 자율심의에 한국MS가 뛰어들었고, 에픽게임즈도 준비에 들어가며 게임 심의가 정부에서 민간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정치권에서 게임에 힘을 실어주려는 움직임도 강했다. 올해 2월에 청와대에서 열린 ‘기업인과의 대화’에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와 넷마블 방준혁 의장이 참여했으며, 문재인 대통령 북유럽 순방에도 게임업체 다수가 동행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한국과 스웨덴 선수가 출전한 e스포츠 교류전을 지켜봤다. 현장에서 그는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가상공간에서 가깝게 만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e스포츠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 북유럽 순방 중 e스포츠 경기를 관람한 문 대통령 (사진출처: 트위치 생중계 갈무리)

게임업계 크런치 모드 돌아오나

올해는 게임업계 노동환경도 많이 변했다. 넥슨스마일게이트 노사가 게임업계 첫 단체협약을 맺었고, 앞서 말한 두 회사와 함께 넷마블, 엔씨소프트도 포괄임금제를 폐지했다. 작년 7월에 300인 이상 기업부터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고, 야근의 원흉으로 손꼽히던 포괄임금제도 일부 업체에서 폐지되며 야근과 철야를 반복하는 ‘크런치’도 옛말이 되는 듯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고용노동부에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52시간 근무제를 완화했는데, 법으로 정해진 시간보다 더 일할 수 있는 ‘연장근로사유’에 크런치를 야기할만한 내용이 포함됐다. 통상적이지 않은 업무량 증가, 시설 및 설비 장애에 대한 긴급 대처, 원청의 갑작스러운 대량 주문까지 3가지다. 넥슨, 스마일게이트, 네이버, 카카오 노조는 지난 11월에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을 어렵게 하는 특별연장근로 허용 확대를 취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 게임·IT 노조 4곳은 기자회견을 통해 52시간 근무제 완화에 반대한다고 전했다 (사진제공: 한국게임기자클럽)

게이머 민심 얻지 못한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 올해 11월 기준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미준수 게임 목록 (자료제공: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게임업계가 추진하는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는 민심을 얻는데 실패했다. 매월 자율규제를 지키지 않는 게임과 게임사 목록을 발표하고 있으나, 게이머 입장에서는 자율규제 덕분에 확률형 아이템 문제가 해결됐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11월 기준으로 13번, 9번씩 자율규제를 지키지 않았다고 발표된 클래시 로얄, 브롤스타즈에 판매되는 확률형 아이템에 게이머는 큰 불만이 없다.

따라서 게임업계가 확률형 아이템 문제를 스스로 풀어가고 싶다면 지금 하고 있는 ‘확률 공개’만으로는 부족하다. 게임위 이재홍 위원장 역시 지난 5일 페이스북을 통해 ‘과도한 확률형 아이템은 지구촌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며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전한 바 있다. 유럽을 중심으로 확률형 아이템 규제가 거세지는 지금, 자율규제를 지키고 싶다면 게이머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올해도 굳게 닫힌 중국 판호

게임업계에서 가장 답답한 부분은 2년 째 중국 판호가 굳게 닫혀있다는 것이다. 올해 차이나조이에 소니, MS, 닌텐도까지 콘솔 3사가 한데 모였고, 최근 텐센트 손을 잡은 닌텐도가 중국에 상륙했다. 중국 정부가 자국을 넘어 외국에도 문을 열고 있는 이 시점, 한국 게임은 2017년부터 판호를 단 하나도 받지 못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중국이 판호를 내주지 않으면 한국에서도 중국 게임을 차단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의견이 나왔을 정도로 업계가 느끼는 답답함은 상당히 크다.

중국 판호 문제는 업계를 넘어 정부가 나서서 국가 대 국가로 풀어줘야 할 부분이다. 올해 9월에 국회에서 열렸던 ‘2019 대한민국 게임포럼’에서 문체부 박양우 장관은 “중국이 아직까지 한한령 여파로 보호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있다. 물론 이는 머지 않아 풀릴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밝힌 바 있다. 내년에는 ‘풀릴 것으로 기대된다’는 전망이 아니라 오래 기다렸던 판호가 드디어 나왔다는 기쁜 소식이 나오길 바란다.

▲ 올해 10월에 열렸던 중국 판호 문제 관련 국회 토론회 현장 (사진: 게임메카 촬영)

20대 국회 통과 못한 셧다운제 폐지법

20대 국회가 막바지에 치달으며 묻히기 아까운 게임 관련 법안도 폐기 위기에 몰렸다. 대표적인 것은 김병관 의원이 발의한 셧다운제 폐지법과 게임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문화예술에 포함시키는 문예진흥법 개정안이다. 두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면 셧다운제도 없어지고, 게임이 차지하는 위상도 상당히 높아졌으리라 생각하지만 아쉽게도 20대 국회를 넘지 못할 전망이다.

이 외에도 e스포츠 불공정계약 해소를 목적으로 발의된 ‘e스포츠 표준계약서법’, 불법프로그램 근절을 목표로 핵을 쓰는 이용자도 처벌하라는 것, PC방 사업자 부담을 낮춰주기 위해 밤 10시 이후에 청소년이 신분증 위조 등으로 나이를 속여서 출입해도, 업주가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면 처벌을 면해달라는 것 등 법안 다수가 국회에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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